[여행의 향기] 출렁다리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전남 강진의 유일한 유인도

입력 2018-02-11 15:02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13> 겨울 섬 여행의 백미 가우도

광주샘·만덕산·다산초당… 곳곳에 다산 정약용의 흔적이

청자타워 가는 길목에 있는 당숲엔
후박나무 군락 이루며 신성한 기운 가득

트레일·짚트랙·낚시체험 등 레저 다양
감성돔·키조개 해산물 먹거리 풍성





출렁다리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 우리가 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출렁이며 살아오다 보니 도대체 출렁이지 않는 다리에는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일까. 섬이고 산이고 바다고 강이고 간에 출렁다리만 생겼다 하면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근래 출렁다리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곳은 단연 강진의 섬 가우도(駕牛島)다. 전남 강진군 강진만에 있는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는 2011년 이전까지만 해도 관광객 숫자 집계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한적한 섬이었다. 그런데 2011년과 2012년 잇달아 육지와 연결된 출렁다리 두 개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4년에 4만 명이 찾아들더니 2015년에는 43만 명, 2016년에는 73만 명, 그리고 2017년에는 86만 명이나 됐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이 다리들은 결코 출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름만 출렁다리다. 우리가 얼마나 이름을 쫓고 사는지 보여주는 증표기도 하다.

한국 관광 100선 강진 대표 관광지

가우도는 10만여 평(32만㎡)의 작은 땅에 30여 명의 주민이 살던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었다. 청자 도요지와 다산초당 사이에 있는 섬인데 강진군이 주요한 두 관광지를 연결하는 중간 경유지로 조성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12년 인도교를 만들면서 섬은 상전벽해가 됐다. 출렁다리는 강진군 대구면 저두리와 가우도 간 438m, 도암면 신기리 망호와 가우도 간 715.9m 등 두 개다. 출렁다리 개통 후 2014년에 4만 명이던 가우도 관광객 수가 1년 만에 10배나 급증했던 것은 가우도가 2015년 전라남도의 핵심 시책인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출렁다리 이후 가우도에는 2.4㎞의 트레일과 짚트랙, 낚시체험 시설 등이 설치돼 걷기와 레저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섬이 됐다. 짚트랙은 섬의 정상 한가운데 세워진 25m의 청자타워에서 대구면 저두마을로 하강하는 체험시설이다. 1㎞ 거리를 불과 1분이면 도착하는 짜릿함 때문에 인기가 높다.


이제 가우도는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의 2017~2018 한국 관광 100선에 포함될 정도로 강진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섬이든 어디든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무조건 주민에게 득이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이재에 밝은 몇몇 주민이나 외부에서 유입된 자본력 있는 업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다수 주민은 별다른 혜택도 못 받고 오히려 소음과 교통체증, 쓰레기 등의 피해만 입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가우도는 관광객 증가에 따른 혜택이 모든 섬 주민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마을 식당 등은 주민들이 주인인 마을 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가우도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가우도의 모든 주민은 일자리를 얻었고 소득도 증가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우도 개발의 가장 중요한 의미다.


섬의 모양이 소의 멍에처럼 생겨서 가우도

이 나라에서 섬이나 관광지 개발의 이익이 소외된 주민 없이 모두에게 돌아간 사례가 있었던가. 아마도 가우도가 그 처음일 것이다. 짚트랙 등 기반 시설 기획은 강진군의 몫이었지만 관광 소득이 주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만든 것은 협동조합과 마을식당 등을 세우도록 지원한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이다. 널리 유포돼 마땅한 모범적인 사례다. 인도교 또한 공신이다. 강진군은 처음에 차량 통행이 가능한 다리를 놓을 계획이었지만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공사비 마련의 어려움과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계획이 백지화되자 인도교로 변경했다. 천만다행이 아닌가. 만약 차량이 들어가는 다리가 건설됐다면 가우도에 그토록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었을까! 섬에 무조건 차량이 들어가는 다리만 고집하는 다른 지자체들은 좋은 예로 삼아야 마땅하다.

가우도는 섬 모양이 소의 멍에처럼 생겨 가우도라 했다고 전한다. 가우란 가마나 상여 또는 짐수레를 끄는 소를 말한다. 가우도에 조선 초기부터 고씨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당시에도 강진과 제주의 왕래가 활발했던 듯하다. 그 고씨가 제주 고씨다. 제주 고씨가 가우도에 정착한 것은 강진과 제주 사이의 교류 때문이다. 강진의 옛 이름은 탐진(耽津)이다. 탐라국(耽羅國)에서 신라에 온 배가 정박하던 나루(津)라 해서 얻어진 이름이 탐진이다. 탐진강도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동환록><강진군지> 등에는 “탐라국의 성자(星子)가 신라의 조회에 참여하거나 나라에 토산물을 바칠 때 배를 정박하던 곳이니 곧 탐진(耽津)이라 한다”고 탐진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탐라국은 제주도에 있던 고대왕국이다. 탐라가 신라나 고려의 번국이 된 뒤에는 탐라 왕이나 태자가 성주, 왕자 등의 직책을 하사받았는데 성자는 탐라의 왕이나 태자를 말하는 듯하다. 탐진은 탐라의 왕족이 한반도 내륙의 왕국들과 교류할 때의 관문이었다. 가우도는 그 관문인 탐진강 하구 강진만에 있다. 6세기경에는 아랍 상인들이 뱃길을 따라 탐진의 대구면 하저리까지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다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광주샘

가우도의 당숲은 청자 타워 가는 길목에 있다. 산정에 짚트랙이 설치되고 관광객들로 북적이면서 예전 같지는 않지만 후박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우도 당숲은 신령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더 이상 당제를 모시는 사람이 없어 당집은 허물어져 폐가가 되었다. 후박나무 군락지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당집, 서낭당이 있었다. 후박나무가 당 할머니였다. 정월 보름날이면 제관인 남자 두 사람을 뽑아 정성스럽게 제를 모셨다. 여자들은 당집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당제는 6·25전쟁 이후 중단됐다. 그때는 당산목인 마을 어귀 우물가의 500년생 좀팽나무에도 제를 올리고 풍어를 빌었으나 나무가 고사한 뒤 중단됐다.

옛날 가우도 선창가 마을 입구의 광주샘은 물맛이 좋기로 명성이 높았다. 광주까지도 그 소문이 자자했다 해서 광주샘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다. 샘물을 마시고 위장병을 고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버려져 지금은 말라버렸다. 아쉬운 일이다. 강진에 유배 와 있던 다산 정약용 선생도 다산초당에서 가까운 가우도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다산이 와서 이 광주샘물을 마셨다고도 한다.

다산이 마시던 샘이라니 복원이 된다면 얼마나 의미 깊은 일이겠는가.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섬은 우리나라의 그윽한 수풀이니 진실로 경영만 잘하면 장차 이름도 없는 물건이 물이 솟아나듯, 산이 일어나듯 할 것”이라고 썼다. 국가경영을 위해 섬과 바다와 갯벌의 중요한 가치를 설파했었던 것이다. 다산은 아마도 만덕산에 오르거나 다산초당에서 구강포 바다의 섬들을 바라보고 또 가우도를 몸소 다녀가면서 그런 원대한 구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 가우도는 다산이 구상하던 섬 경영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다산의 예언이 적중했다.


감성돔 회, 키조개 관자 등 먹거리 풍성

탐진댐을 막기 전까지 가우도 앞바다는 황금 어장이었다. 장흥에서 흘러온 탐진강은 강진만에서 바다와 합류된다. 가우도가 있는 강진만 하구에 구강포(九江浦)가 있다. 아홉 고을의 계곡 물이 흘러든다 해서 구강포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구십포(九十浦)라고도 했다. 어느 지역이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구역은 최고의 어장이다. 내륙에서 내려오는 영양분을 섭취하려 물고기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이 바다는 어선이 많아 밤이면 어선의 불빛이 가득했다. 그 풍경을 구강어화(九江魚火)라 했고 금릉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탐진강 덕에 가우도 주변 강진만 바지락의 유명세도 대단했다. 가우도 갯벌에서 나는 바지락이 전국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모두 이 물길 때문이었다. 하지만 탐진댐이 들어선 뒤 물길이 끊기자 강진만은 생기를 잃고 죽어갔다. 도암, 만덕, 사초리 등에 마구잡이 간척사업이 벌어지면서 물길이 끊긴 것도 이유였다.


강에서 내려오는 물이 오염물을 씻어가고 영양분을 보충해주었는데 물길이 끊기니 바지락이 살기 어려워진 것이다. 간척지가 없고 댐을 막기 전에는 바지락을 하루에 두세 자루씩 캐곤 했었다. 연간 50~60t의 바지락이 쏟아져 나왔다. 뻘밭에 손을 집어넣으면 다 바지락이었다. 캘 필요가 없었다. 그냥 주워담으면 됐다. 여름철 큰물이 내려오고 모래가 흘러들어와야 바지락 종패가 형성되는데 댐을 막고 간척지를 조성해 생태계가 변하니 이제 더 이상 종패도 생기지 않는다. 1970년까지만 해도 강진만 바다는 강진군 공동 종패장이었다. 7~8월 종패를 캘 때가 되면 적을 때는 6만, 많을 때는 10만 명까지 강진만으로 몰려들었다. 대단한 장관이었다. 이 바다에서 언제 다시 그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이제는 강진만 바지락의 씨가 마를 지경이다. 내륙에서 생긴 생태계 변화가 결국 바다 생태계를 파괴해 어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하지만 보상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섬과 어민들의 힘이 약한 탓이다.

지금은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까닭에 섬도 몸살을 앓고 있지만 강진만 갯벌과 바다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가우도의 음식 맛은 최고의 남도 음식이라 이를 만했다. 몇 해 전 가우도 마을회관에서 맛본 가우도 해산물 음식들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감성돔 회와 키조개 관자, 굴숙회, 굴전, 갑오징어 회와 무침, 개불, 도미껍질 데침, 취나물, 엄나무 잎나물 등 모두가 주민이 손수 채취해 내놓은 토속 음식이었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특히 갑오징어 먹물찜은 그 감칠맛이 새록새록 하다. 찰진 갑오징어의 다른 내장은 제거하고 먹물만을 넣고 쪄낸 요리는 무엇과도 비교 불가한 최고의 감칠맛이었다. 여행자여, 혹여 가우도에 가거든 갑오징어 먹물찜만은 꼭 맛보고 오시라.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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